정부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자기 발밑을 보는 사람이 가장 멀리 본다는 말입니다.
학생들을 다그칠 일이 아닙니다. 정부부터 배울 일입니다. 방과 후 학교, 아니 '일과 후 학교'를 열어 영어를 배우기 바랍니다. 논술도 함께 배워야 합니다.
2.
농림수산식품부의 이상길 축산정책단장이 시인했습니다. 오역 탓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이 동물성 사료금지 조치를 완화하기로 했는데도 거꾸로 강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정부의 처사는 번역을 잘못 해서 빚어진 실수라고 했습니다. “미국 식품의약청이 공개한 영문 보도자료를 우리 쪽이 잘못 해석한 데서 빚어진 실수였다”고 했습니다. <한겨레> 기사 참조
어이가 없습니다. 말문이 막힙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정부가, 다른 사안도 아니고 국민 건강과 통상 문제에서 상식을 한숨 짓게 만드는 실수를 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곧이곧대로 들리지가 않습니다. 고의를 실수로 포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쇠고기 합의문과 정부 관보를 비교했더니 21곳에서 표현이 달랐다는 보도도 나온 바 있습니다. 실수라고 치기엔 사례가 너무 많은 점도 마음에 걸립니다. <국민일보> 기사 참조
하지만 제쳐두렵니다. 고의라고 단정할 근거가 없습니다. 뻔히 드러날 사실을 거짓 되게 알렸다고 간주하기엔 너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인정하고 나니 허망합니다. 국정을 책임진다는 관료들이,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영어 문장을 잘못 번역했다는 게 말이 되질 않습니다.
정부가 학생들에 요구하는 영어는 생활영어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갖춰야 하는 영어는 비즈니스 영어이고 통상영어입니다. 어떤 영어가 더 고차원적인지, 어느 쪽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는 자명합니다.
3.
논리도 그렇습니다.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상길 축산정책단장이 그랬습니다. 재협상은 요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과 협상과정에서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 우리가 미국 쪽에 명확히 요구한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사료 조치의 실제 내용이 달라졌다고 해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했습니다.
말이 다릅니다. 4월 18일 쇠고기 협상을 타결 지은 뒤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정부가 그랬습니다. “강회된 사료 금지 조치를 공포할 경우”에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누가 봐도 분명한 전제조건입니다. 우리가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주는 대신 ‘강화된 사료 금지 조치 공포’를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합니다.
모순입니다. 이상길 축산정책단장의 해명이 보도자료를 배척합니다. 보도자료가 이상길 축산정책단장의 해명을 부정합니다.
궤변입니다. 총론만 요구했지 각론은 요구한 바 없다는, 그래서 각론은 미국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주장은 주고받기를 속성으로 하는 협상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논술을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그래서 논리가 뭔지 손톱만큼이라도 깨우쳤다면 해서는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단지 기왕지사가 됐으니 군말 없이 따르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행태입니다.
4.
쓸 데 없는 얘기겠죠? '일과 후 학교'? 영어와 논술? 다 부질없는 얘기겠죠.
압니다. 씨도 안 먹힐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래도 이렇게 읊조리기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선 풀 길이 없습니다.
마음 둘 데가 없습니다. 꽉 막힌 듯한 느낌입니다.
▲사진=이상길 농림수산식품부 축산정책단장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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