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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넌센스다. 소통을 강조하면서 '소탕'을 꾀하는 건 이율배반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랬다. 지난 13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소통문제에 있어 다소 부족한 점이 있지 않았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소통을 강조하던 그 날 어청수 경찰청장은 '소탕'을 다짐했다. 촛불문화제 주최자와 이른바 ‘괴담’ 발신자를 찾아내 사법처리하겠다고 했다.

앞뒤가 안 맞는 건 아니다. 육두문자와 비방이 오가는 건 소통이 아니라 악다구니다. 다른 건 몰라도 ‘괴담’이 정말 괴담이라면, 그리고 정부가 간주하듯이 그런 괴담에 불순한 의도가 개입돼 있다면 정상적인 소통을 위해서라도 발본색원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 건 논리다. 그것도 지극히 비현실적인 형식논리다. 현실논리, 상황논리는 전혀 다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소통이 부족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 전혀 다른 현실논리, 상황논리를 떠받치고 있다.

촛불문화제가 왜 열렸는지는 물어볼 필요가 없다.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는데도 정부가 딴청을 피우는 바람에 발생한 게 촛불문화제다. 정부가 국민 개개인의 우려에 대꾸를 하지 않고, 네티즌의 청원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바람에 더 큰 목소리를 내려고 집어든 게 촛불이다.

‘광우병 괴담’이 왜 유포됐는지도 따질 필요가 없다. 과정을 보면 안다. 정보 소통이 거의 없었다.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4월 18일 이후 지금까지 정부가 자진해서 밝힌 내용은 그리 많지 않다. 협상문 행간을 뒤져가며 숨어있던 합의내용을 찾아내고, 미국 연방정부 홈페이지를 누비며 미국의 광우병·검역·동물성 사료 실태를 밝혀낸 건 민간이다. 정부는 단지 한 가지 한 가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예, 아니오’로만 대답했을 뿐이다.

정부가 입만 열면 읊조리는 ‘건전한 비판’과 ‘악의적 선동’은 기실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한 장의 종이에 국민이 알아야 하는 정보를 빼곡이 적어 전달했는지, 아니면 백지장으로 던져버렸는지에 따라 반작용이 ‘건전한 비판’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악의적 선동’으로 흐르기도 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정부가 소탕해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다.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 이른바 ‘괴담’이 유포되게 만든 자신을 질책해야 하고, 이른바 ‘악의적 선동’이 만연하게 만든 자신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에둘러 물을 게 아니다. ‘도의적 책임’이나 ‘정무적 책임’을 운운하는 건 필요 없다. 정부가 국민을 향해 ‘업무방해’와 ‘명예훼손’과 같은 죄목을 거론하는 것과 똑같이 물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해서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그 실상을 낱낱이 공개한 다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가를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모색하는 ‘소탕’이 정당한 것인지를 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또 다른 소통이 가능해질 것이다. 정부의 ‘소탕’에 대한 ‘차분한 소통’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사진=어청수 경찰청장 ⓒ경찰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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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