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단념자.’ 취업 의사와 능력은 있으나 ‘노동시장적 사유’로 일자리를 구하지 않는 사람 중 1년 내 구직 경험이 있었던 사람을 뜻한다. 구직 활동에 나섰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뒤 구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실망 실업자’를 뜻하기도 한다.
정부는 이렇게 구분한다. 그래서 최근 4주간 적극적으로 구직 활동을 한 사람 중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을 의미하는 ‘실업자’를 경제활동 인구에 포함시키는 반면에 구직 단념자는 경제활동인구에도 포함시키지 않는다.
정부의 이런 분류법을 당사자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니, 누구 맘대로 구직을 단념했다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물론 기분 안 좋죠. ‘백수’는 그래도 노력하는 존재라는 함의를 담고 있지 않나요? 왜 정부가 구제할 수도 없으면서 마음대로 규정하려 드는 겁니까?”
20일 경기 성남 중원도서관에서 만난 ‘전국백수연대’ 회원 아이디 ‘마페’(30)는 분통부터 터트렸다.
“누군들 취업을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지난 2002년 전문대를 졸업하고 그가 선택한 것은 직업전문학교였다. 취업 장벽을 쉽게 통과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직업전문학교 졸업 이후 들어간 직장은 전공인 컴퓨터와 맞지 않았다. 다시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그나마도 여의치 않았다. 몇 군데 직장을 전전하다 마지막으로 성남 인근 공단의 공장에서 캐드 일을 하게 됐다. 그 일 역시 사장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경찰서를 오고가는 통에 금세 접고 말았다. 그 뒤로 지난 6개월간 ‘백수’로 지내며 힘을 잃고 있다. 정부의 표현대로라면 ‘마페’ 또한 구직 단념자의 대열에 서 있는 셈이다.
“마지막 직장에서 나올 때는 ‘왜 이렇게 꼬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력서 내는 것도 지쳐서 여기저기 친구들한테 구직 부탁도 해보지만… 쉽지 않네요.”
스스로 생각하는 결점이 있긴 하다. 대학 시절 발병한 간염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 면접을 볼 때마다 묻는 병력에 그는 우물쭈물해야 했고, 그것이 취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단다.
“일종의 두려움이죠. 하지만 더 큰 두려움은 무기력입니다.”
사실상 무직 상태였던 지난 6년간 그의 공포는 나태와 무기력이었다. ‘네 나이가 벌써 서른’ 이라며 채근하는 부모님의 성화마저 뚝 끊긴 것 역시 공포다.
오랜 백수 생활을 보내며 ‘그래도 기상 시간은 빨라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오전 7시쯤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도서관에 출근해 취업정보 검색하고, 소일거리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는 소설도 쓰다가 집에 돌아와선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 게 평균적인 하루 일상이다.
“용돈 조달요? 솔직히 쓸 데가 없어요.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취업을 해서 만날 일도 드물고 만나도 자기네 회사 이야기만 늘어놓으니 부담도 되고…. 생활반경이 점점 좁아지는 거죠. 도서관이 없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국백수연대’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이유도 무기력 타파를 위해서였다. 홍대 인근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갖기도 했고, 동료 ‘백수’들과 사회적 기업을 만들자는 모색도 해봤다. 안타깝게도 흐지부지 됐지만.
“회원은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아는데 아무래도 백수라는 위치 때문인지 오프라인에서 모이는 수는 많지 않더라구요. 조금 아쉽습니다.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끼리 서로 힘을 얻으면 좋을 텐데, 지역별로 모여 백수 탈출 정보도 주고받고 말이에요.”
그가 주변에서 무수히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는 예상대로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이다.
“인근 상대원 공단도 있는데 거기서 일해보라는 말 많이 듣죠. 하지만 바로 그곳에서 마지막 일을 해보지 않았습니까? 겪어보니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더라구요.”
다른 측면에서 ‘젊은 사람들이 사회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도 그를 ‘발끈’하게 하는 것이다.
“친구 만나는 것도 소심해지는 백수들이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있겠어요? 그래놓고 촛불집회엔 실업자들만 나온다는 말이나 하고, 더 열 받죠. 백수들끼리 마음 맞춰 모이는 것도 힘든데 집회엘 어떻게 나가요. 저만 해도 ‘아프리카’에서 실시간 중계나 봤을 뿐이에요.”
세상 이목이 집중된 올림픽도 관심 밖이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1등만을 주목하는 올림픽 열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백수’에게는 힘든 시절이다.
“딱 봐도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대다수인 이 도서관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해봤죠. 어디 한 건물에 백수들만 모여 일도 시키면서 더 나은 취업을 위한 자기계발을 지원하면 어떨까 하는…. 정부 지원이요? 에이, 정부는 그냥 조용히 있어주기만 해도 고맙죠. 종교단체나 사회단체 같은데서 해 볼 순 없을까요?”
‘마페’는 어쩔 수 없이 공상이 늘었다며 웃는다. 몸 놀릴 생각으로 집 뒷마당에 옥수수를 심어놓고는 ‘이걸 바이오 디젤로 만들어 팔아 볼까’ 궁리 하면서 또 혼자 웃는다.
결코 길게 실업상태를 유지하고 싶지 않지만 자꾸 움츠러든다. 실업이 일상화되고 있는 시대에 ‘직장 못 구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고 채근하는 사람들 앞에서 뭐라 한마디 하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건설경기 부양으로 일자리를 만들려는 정부 계획을 보면 시대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아 답답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전국에 백수들한테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라고 말하고 싶네요. 아니면 ‘백수봉사대’라도 만들면 어떨까요? 봉사만큼 활력을 주는 게 없잖아요. 취업 후 하고 싶은 일이요? 저는 우선 남들 다 한다는 CMA 통장부터 만들려구요.”
※‘마페’가 발끈한 ‘구직 단념자’는 계속 늘고 있다. 지난 19일 통계청은 ‘7월 고용동향’을 통해 지난달 비경제활동인구 가운데 구직 단념자는 12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1만 6100명(15.5%)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자료사진 출처=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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