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국민일보>가 권력의 '압력'에 굴복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가짜 영농계획서 기사를 누락했다고 간주하는 건 어설프고 엉성합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까 먼저 이점부터 분명히 해야 겠네요. '압력'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위치가 위치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권력이 집중된 청와대의 대변인입니다. 전력도 있습니다. 박미석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논문 표절 기사를 누락한 전력을 갖고 있습니다. <국민일보>가 청와대의 권력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볼 정황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압력'이 기사 누락 사태를 부른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는 겁니다.
이동관 대변인의 해명에 또 다른 이유가 숨어 있습니다. 그가 그랬습니다. 압력을 행사한 게 아니라 부탁한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민일보 편집국장은 친한 언론사 동기로 두세 차례 전화를 해 사정을 설명하고 자초지종을 얘기하면서 친구끼리 하는 말로 ‘좀 봐줘’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동관 대변인의 말을 축약하면 "친한 동기에게 부탁했을 뿐"이 됩니다. 이게 바로 문제입니다.
'폴리널리스트'가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언론사 기자로 일하다가 하루아침에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동관 대변인 역시 '폴리널리스트'입니다.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이명박 캠프로 자리를 옮긴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능했습니다. "친한 동기에게 부탁"할 수 있었습니다. 거리낌 없이, 체면 불구하고 "좀 봐줘"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동관 대변인만이 아닙니다. '폴리널리스트'는 수십 명을 헤아립니다. 어떤 '폴리널리스트'는 금배지를 달았고, 어떤 '폴리널리스트'는 감투를 썼습니다.
이들도 똑같이 할 수 있습니다. "친한 동기에게 부탁"할 수 있습니다. "좀 봐줘"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수 있습니다.
편집국장에게만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취재현장에 나와 있는 "친한 후배"에게 그렇게 부탁할 수 있고, 데스크에 앉아있는 "친한 선배"에게 그렇게 요청할 수 있습니다.
세상사가 꼭 칼로 무 자르듯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생면부지의 정·관계 인사는 소 닭 보듯 할 수 있지만 여러 해를 동고동락했던 '폴리널리스트'는 그렇게 대하기 힘듭니다. 원칙을 뒷전으로 밀어놓고 '인지상정'에 빠지기 십상이지요.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더 악성입니다. '압력'보다 더 복잡하고 '탄압'보다 더 미묘한 게 바로 이런 현상입니다. '인간적 의리'를 앞세워 '압력'을 희석시킬 수 있습니다.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 명의 '폴리널리스트'가 선·후배를 붙잡고 "좀 봐줘"라고 말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굳어가는지 모릅니다. '압력'이 '인간적 의리'로 둔갑해 일상화되고 구조화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진 출처=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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