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했던 모양이다. 이용준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어제 닝푸쿠이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 성화 봉송과정에서 발생한 중국인 난동에 대해 유감의 뜻을 전달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만 하룻만에 대응한 것이다.
알리고 싶었나 보다. 문태영 외교부 대변인이 나서 설명했다. "대사를 불러 강한 유감을 표명한 것은 외교에서 강한 의사 표시”라고 했다. 정부는 나름대로 노력했다는 의사 표시다.
받아들여도 될까? 정부가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고 평가해도 될까?
글쎄다. 문태영 대변인은 "강한 의사 표시"라고 자평했지만 전폭적으로 수긍할 만한 것 같지는 않다. 과거에 일본이 역사 도발을 했을 때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한마디 했던 사람은 장관 아니면 차관이었다. 이번엔 차관보다. 게다가 의사 표현도 "유감" 표명 정도로 끝내버렸다.
정부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부문, 즉 경찰의 조치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난동 현장에서 체포한 중국인은 단 한명. 이 중국인조차 집시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하는 데 그쳤다. 폭력행위처벌법도 아니고, 게다가 구속도 아니다. 경찰은 채증된 사진을 판독해 난동 주모자를 검거하겠다고 뒤늦게 밝히고 있지만 얼마나 가능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두 거대 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일언반구 말이 없다. 중국인 난동으로 어제 하루 사회가 들끓었는데도 그 흔한 대변인 논평 하나 내놓지 않았다. 두 정당 홈페이지 어느 구석에서도 관련된 논평이나 브리핑을 찾을 수 없다.
더욱 기가 막힌 건 이들이 밝힌 '침묵'의 이유다.
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이 그랬다. "이슈가 많은데 모든 것에 대해 다 코멘트를 할 수는 없다"며 "필요한 최소한의 현안에 대한 논평만 하는 것이 당의 방침이었다"고 했다. 차영 민주당 대변인이 그랬다. "이(중국인 난동)는 국제적으로 티베트와 중국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해프닝"이라며 "중국과의 관계도 있는데 코멘트를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프레시안>에 밝힌 입장이다.
공당의 인식이 이렇다. 자국민을 폭행하고 자국의 치안을 농락한 사건을 "필요한 최소한의 현안"에 끼지도 못하는 "해프닝"으로 치부한다. 어이가 없고 말문이 막힌다.
그래도 이건 말해야 겠다. 차영 대변인이 한 말, 어쩌면 두 거대정당이 침묵하는 진짜 이유가 담겨있는지도 모를 말에 대해 언급해야 겠다. "중국과의 관계"다.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동포가 살고 있고, 최대의 교역 상대국이고, 북핵과 동북아 정세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곳이 중국이다. 성질나는대로 상대하기가 어려운 나라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처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 그건 정부의 몫이지 정당의 몫이 아니다. 정당이 먼저 나서서 헤아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거꾸로다. 정당의 중요 기능 가운데 하나가 바로 '외교 바람잡이' 역할이다. 국익과 국가의 자존을 위해 할 말 하고 요구할 것 요구해야 하는데도 상대국과의 관계 때문에 정부가 대놓고 말하기 어려울 때 정당이 도와주는 게 상례다. 정당이 나서서 국내 여론을 조성하고 이 여론을 갖고 정부를 압박하는 모양새를 연출해줌으로써 정부의 발언력을 높여주는 게 통례다. 국제외교무대에서 정부가 "국내 여론과 정치상황이 이러니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정당의 기능이다.
현실은 뒤집혀 있다. 정부는 그나마 "유감"을 표명하는데 정당은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정당보다 더 먼저, 그리고 더 심각히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정부마저 한 마디 하는데 두 거대정당은 입을 닫고 고개를 돌렸다.
참으로 희한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싸우는 두 거대정당이 엉뚱한 대목에서 '침묵 공조'를 하는 게 희한하고, 이런 두 거대정당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간다는 게 희한하다.
'핫뉴스분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반노무현의 적자'가 '노무현의 수제자'로 (44) | 2008/04/30 |
|---|---|
| 중국인 난동에 '침묵 공조'하는 두 거대정당 (118) | 2008/04/29 |
|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대 '국민' (6) | 2008/04/28 |
| 사복체포조는 어디로 갔나? (117) | 2008/04/28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