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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6 인터넷이 '디지털 마오이즘'에 빠졌다는 보수언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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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의 '인터넷 5대 괴담' 관련 도표

'디지털 마오이즘'이란다. '인터넷 괴담'이 유포되면서 집단적 감성주의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게 바로 '디지털 마오이즘'의 일환이라고 한다. 인터넷의 최근 흐름을 "미국 미래학자 재런 러니어 씨가 2006년 인터넷을 통한 감성적 집단주의의 위험을 극단적 좌파나 우파, 마오이즘, 독일 나치즘 같은 집단주의 운동에 빗대 사용한 ‘디지털 마오이즘’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동아일보>가 행한 성격 규정이 이렇다.

<중앙일보>도 같다. "인터넷이 '정보 소통에 기반한 합리적인 토론' 대신 '감성에 의존하는 다수의 횡포'에 물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근거가 상당히 구체적이다. <동아일보>는 인터넷 종량제, 독도 포기, 수돗물값 14만원 등 이른바 '인터넷 5대 괴담'을 선정해 조목조목 그 허위성을 밝혀낸다. <중앙일보>도 비슷하다. 같은 사례를 분석하면서 '인터넷 괴담'의 '진화과정'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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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인터넷 진화과정' 관련 도표와 사진

할 말이 없다. 두 신문의 지적은 타당하다. 당국이 아니라고 전면 부인하는 것이 있고, 누가 봐도 아닌 것이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인터넷 괴담'을 '사실'로 받아들일 근거를 찾기 힘들다. 그래서 할 말이 없다. 이견을 달 여지가 거의 없다.

근데 왜일까? 석연치가 않고 흔쾌하지가 않다.

며칠 전에 그랬다. 두 신문은 광우병에 대한 우려를 '괴담'으로 치부했다. 한국인 유전자에 대한 우려를 '광우병 괴담'으로 일축했고 나아가 다른 광우병 우려 또한 '괴담'으로 치부했다.

한정했었다. '괴담'을 광우병으로 한정해 논전을 펼치려고 했다. 지금은 아니다. 앵글을 넓히고 있다. '광우병 괴담'에서 '인터넷 괴담'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석연치 않은 게 바로 이것이다. 두 신문의 질타를 흔쾌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도 이것이다. 의도가 읽혀진다. 외곽 때리기다.

광우병 우려를 단번에 제어하기는 어렵다. 걷잡을 수 없이 번졌기 때문이다. 두 신문이 '광우병 괴담'의 핵심으로 꼽았던 한국인 유전자 문제는 정부조차 우려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강기갑 민노당 의원이 어제 공개한 농림수산식품부의 문건에 그렇게 기재돼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외곽을 때리는 게 한 방법일 수 있다. 광우병 논란의 본거지인 인터넷의 다른 허위사례를 앞세움으로써 그곳의 권위와 활동성을 제약하는 방법이다. 논란의 당사자를 치기 위해 논란과는 관계없는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말문을 막고 설득력을 삭감하는 방법이다.

너무 일방적이고 과도한 해석일까? 며칠 전엔 '광우병 괴담'만 있었지만 '며칠 후'엔 다른 괴담이 추가됐기 때문일까? 그래서 범위를 넓힌 걸까?

그럼 이건 어떨까? 중국인 난동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인터넷은 이른바 '집단적 감성주의'로 넘쳐났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이 중국인에 밟혀 죽었다는 허무맹랑한 유언비어도 유포됐고 중국인 유학생의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땐 이러지 않았다. '디지털 마오이즘'의 일환이라 비난하지 않았다. 국민의 공분을 이해하면서 단지 인터넷의 '과도한' 대응을 지적했을 따름이다.

더 있다. '디지털 마오이즘'만 갖고 따지자면 '황우석 파동'에 필적할 사례는 없다. 소음이 컸고 상처가 깊었던 사건이다. 굳이 반추하지 않아도 누구나 또렷이 알고 있는 사안이다.

이 때 두 신문이 어땠는지도 안다. 인터넷이 논문 조작 사실을 밝혀낸 'PD수첩'을 공적으로 몰아 마녀사냥을 할 때 두 신문이 팔짱 끼고 있었던 사실을 똑똑히 기억한다. 집단적 감성이 난무하고 애국주의가 넘실대던 그 때 두 신문은 강 건너 불구경했을 뿐 아니라 'PD수첩' 때리기에 동조하기도 했다.

말을 하고 보니 어폐가 있다. 그 때의 '황우석 옹호'나 지금의 '인터넷 괴담'이나 허위 사실에 현혹돼 집단적 감성주의가 넘실대는 면에선 같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다. 두 신문이 '황우석'을 거울삼아 사태의 재연을 막으려 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래서 반박 사례로 삼기엔 역부족인 듯 싶다.

하지만 아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천착하면, 그리고 '황우석 옹호'와 '인터넷 괴담'을 맞세우는 게 아니라 '황우석 옹호'와 '광우병 우려'를 맞세우면 비교사례로 손색이 없다.

두 신문은 그 때 그랬다. '황우석'은 '진실'이라고 믿었다. 그러니까 인터넷의 거센 반발은 "합리적 토론"이었고, 그래서 제어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에 '광우병'은 '괴담'이고 '허위'라고 확신한다. 그러니까 인터넷의 격한 논란은 "집단적 감성주의"에 불과하고, 그래서 제어해야 한다.

또렷해진다. 두 신문의 기본자세는 확고하다. 논란의 양태는 중한 게 아니다. 본질적인 것은 논란의 내용, 즉 진위다.

언론의 본령에 충실한 자세 같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을 배반하지 않는 언론의 본령을 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진실이 불분명할 때는 합리적이고 집단적인 토론을 거쳐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 방법을 두 신문은 부정하고 있다. '황우석'에 대해서는 '진실'이라고 단정했고 '광우병'에 대해서는 '괴담'이라고 일축한다. 합리적이고 집단적인 토론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그렇게 간주했고 그렇게 몰아간다.

이들에게 진실은 규명되고 정립돼야 할 것이 아니다. 선험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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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