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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7/01 강경진압의 역설 'MB 가두기' by '토씨' (66)
  2. 2008/05/08 참으로 실용적인 정부의 '엿가락 논리' by '토씨' (25)
  3. 2007/12/26 '이경숙 발탁'이 실용? 그럼 '좌파 적출'은? by '토씨' (44)


이명박 대통령은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쇠고기 협상 이후 지금까지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지지율을 까먹었고 자신의 주요 정책을 민심 무마카드로 내놨다. 집권 초기의 프리미엄은 고사하고 530만 표 차 당선이란 프라이드마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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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그리고 이 모든 것보다 값어치 있다고 여겨온 자산을 잃었다. 바로 ‘실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창해온 ‘실용’의 핵심은 ‘초월’이다. 이념의 대립구도를 초월해 오로지 성과와 이익을 강조하는 효율주의다. 본인과 그 주변이 주장해온 바에 따르면 그렇다.

이 ‘실용’이 무너졌다. 쇠고기 협상에 ‘졸속’ ‘굴욕’이란 딱지가 붙는 순간 ‘실용’의 거품은 터졌다. ‘실용’은 고사하고 ‘실력’조차 의심 받는 처지에 몰려 버렸다.

설상가상이다. 여기에 또 한 번, 아니 결정적으로 ‘실용’을 훼손하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급한 마음에 꺼내들었지만 결국 자신을 덫에 가둬놓을 자충수다. 강경진압이다.

잘 둘러볼 필요가 있다. 여권이 며칠 동안 주장해온 바와 강경진압은 호응하지 않는다.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추가협상 후 민심이 촛불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촛불집회는 이제 극렬 좌파·반미 전문이 주도하는 것으로 변질됐다고 장담했다.

여권이 정말 이렇게 확신했다면 강경진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조금만 참으면 자멸할 집회였다. 순수하고 선량한 국민 다수가 등을 돌려 고립무원의 처지에 빠질 집회였다. 그런 집회에 물대포를 쐈고 소화기를 뿌렸으며 심지어 돌까지 던졌다. 그렇게 강경진압 함으로써 자기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자기 손으로 ‘실용정부’ 간판을 떼어내고 ‘실력행사’ 담화문을 갖다 붙였다.

왜였을까? 조금만 참으면 됐을 텐데 왜 이렇게 서둘러 강수를 둔 걸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정치적 파장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자멸’의 길을 유도하지 않고 정치적·도덕적으로 부담이 큰 ‘진압’의 길을 택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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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아이러니 하게도 여권의 ‘촛불집회 변질’ 주장이 올가미가 돼 버렸다.

그런 주장이 강성 우파에 명분을 주고 말았다. 촛불집회가 변질됐다면 두고 볼 게 뭐가 있냐고, 당연히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논리에 기름칠을 해 버렸다. 촛불집회장에 극렬 좌파·반미 전문만 남았다면 당연히 ‘비타협적으로’ 맞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우파의 대결논리가 득세하게 만들어 버렸다.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은 갇혀 버렸다. 좌우 이념을 초월하기는커녕 우파, 그것도 강성 우파에 갇히는 신세가 돼 버렸다. 촛불집회에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강성 우파의 목소리에 눌려버렸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강경진압을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 쯤으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착각이다. 그렇게 진압하고 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기대하는지 모르지만 그건 미몽이다.

‘착각’과 ‘미몽’ 반대편에서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립지대에 공동화 현상이 발생한다. 정책적 사안이 아니라 도덕적 사안 때문에 중립성향의 국민이 이탈한다. 여느 사안보다 탄력성이 작은 도덕 문제 때문에 중립지대의 국민이 이명박 정부로부터 등을 돌린다. 탄력성이 작다는 건 한 번 마음 먹으면 쉬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과거 회귀 현상이 발생한다. 최루액과 각목을 놓고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란이 빚어진다. 어느 쪽 주장이 설득력이 있느냐는 주장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 논란이 조성할 지형이 중요하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형성되면 흡수한다. 이념공세를 흡수해 버린다. 그게 과거 독재시절 확인한 원리다.

이 두 가지 현상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는 자명하다. 소수화다. 이명박 정부가 소수화 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모조리 장악하고 의회마저 석권했다 하더라도 고립된 섬이 된다. 민심의 바다 한켠에 유폐된 무인도가 된다. 그와 함께 ‘실용’엔 용도폐기 딱지가 붙여진다.

반박 소지가 있는 두 문제를 마저 짚고 마무리하자.

하나. 왜 단정하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변질된 촛불집회를 강경진압하는 게 오히려 국민 지지를 끌어낼 수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촛불집회가 변질됐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설득해야 한다. 그 한 예가 강경진압의 맞은편에서 ‘극렬 저항’하는 사람들의 면모다. 이들이 극렬 좌파·반미 전문의 전력을 갖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택배기사와 20대 여성이 등장한다. ‘극렬저항’한 사람은 택배기사였고 ‘강경진압’에 팔이 부러진 사람은 평범한 20대 여성이었다.

둘. 성격 규정이 잘못 됐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은 애초부터 정체성이 모호한 ‘자화자찬’에 불과했다고, 이명박 정부의 본체는 본래 우파였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따라서 반박할 여지가 별로 없다. 다만 이 점만 강조하련다. ‘우파 본색’으로 표현하지 않고 ‘실용 변질’로 표현한 이유가 있다. ‘변질’이 ‘본색’을 더욱 명징하게 드러내는 작용을 하고 있다고 판단한 게 그 이유다.

▲사진 제공=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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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논리 박약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엿가락 논리라고 해야 할까? 정부의 쇠고기 논리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한 마디로 '그때그때 달라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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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그랬고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그랬다. 쇠고기 개방으로 국민 건강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있다면, 다시 말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즉각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지적이 나왔다. 한미 쇠고기 협상 위반이라고 했다. 협상문에 따르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국제수역사무국이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하향조정하지 않는 한 수입을 중단할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이를 위반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정운천 장관이 대답했다.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20조를 원용하면 된다고 했다. ‘인간 및 동식물의 생명·건강 보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협정 적용의 예외로 인정하는 이 조항을 적용하면 수입중단이 가능하다고 했다.

논란이 됐다. GATT의 조항은 일반적 법률관계인 반면에 한미 협상은 특별한 법률관계이기 때문에 원용이 어렵다는 반론이 나왔다.

여기서 일단 꼬리를 끊자. GATT 조항을 원용할 수 있는지 여부는 제쳐놓고 정부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원용이 가능하다고 치자.

당장 이런 의문이 싹튼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미국이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앞세워 시장 개방을 요구할 때 GATT 20조를 내세워 방어하지 않은 걸까? 정부는 입만 열면 얘기해왔다. 쇠고기 수입 개방은 '국제적 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왜 OIE의 기준은 신봉하면서 GATT의 기준은 외면한 걸까?

혹시 이것 때문일까? 정부는 수입 개방 사유로 '국제적 기준' 외에 '과학적 근거'를 들었다.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는 과학적 근거를 대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근데 이것도 문제가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회원국에게 광우병과 같은 전염병에 대해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하더라도 잠정적으로 검역 조치를 취할 국제법적 권한을 주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과학적 근거가 약간 불충분하더라도 얼마든지 수입 개방을 거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종잡을 수 없는 게 하나 더 있다.

정부는 안 된다고 했다. 재협상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수입은 중단할 수 있다고 했다. 역설적인 주장이다. 약한 건 안 되고 강한 건 된다는 논리다.

수입 중단은 명백한 협상 파기다. 그래서 일방적이다. 반면에 재협상은 상대의 동의를 전제로 협상 내용을 다시 짜는 것이다.

후과가 어떨지는 자명하다. 일방적인 파기는 보복을 부른다. 후폭풍이 몰려온다. 반면에 재협상은 과정이 어려운 반면 뒤가 깨끗하다. 문제될 소지를 없애기 때문이다.

어떤 게 깔끔한 일처리인지는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역주행을 한다.

정부의 엿가락 논리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실용'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그랬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확률이 낮다는 확신에 따라 대통령이 이런 방침(수입 중단)을 밝히기로 했다”고 말했다.

계산이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는 일은 없을 테니가 수입을 중단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목소리 톤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확률이 '0'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낮다"고 했다. 이 "낮은" 확률이 현실화하면 어떻게 될까?

그것에 대해서는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대답했다.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100여개 나라가 가만히 있겠느냐고 했다. 미국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겠느냐고 했다.

묻어가겠다는 얘기다. 분위기에 묻어가고 다른 나라에 묻어가겠다는 얘기다. 그러면 미국과의 대립·마찰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참으로 실용적이다. 이론보다는 현실, 원칙보다는 실리를 취하는 실용적인 행보다. 국민의 건강을 운에 맡겨야 한다는 점, 그리고 나라의 자존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만 빼면 '실용'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다.

▲사진=어제 열린 쇠고기 청문회에 출석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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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

대다수 언론이 '실용'을 운위한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으로 이경숙 숙명여대 총장을 발탁한 건 실용주의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예라고 한다. 능력과 전문성을 갖추면 이념과 전력을 문제 삼지 않는 이명박 당선자의 인사 스타일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인선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치자. 이명박 당선자 말마따나 27년이나 지난 일이다. 얼룩이 빠질 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는지 모른다. 대학 총장을 연거푸 네 번이나 맡으며 학교 발전을 이끈 업적이 있다. '능력'은 이미 검증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다고 치자.

확인할 게 있다. 이명박 당선자가 강조하고, 대다수 언론이 장단을 맞추는 '실용'이란 개념이다. 도대체 이것의 정체가 뭔가?

역시 대다수 언론이 '실용'의 주해서로 들먹이는 이론이 '흑묘백묘론'이다. 중국의 덩샤요핑이 했다는 유명한 말이다. 쥐만 잘 잡으면 되지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그게 뭐 그리 대수냐는 말이다.

'실용'과 '흑묘백묘론'을 연결해놓으니 그럴싸하다. 일 잘 하면 되지 과거 전력이 뭐 그리 대수냐는 말은, 경제를 키우면 되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뭐 그리 대수냐는 말과 닮아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덩샤오핑의 행적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 천안문 사태를 유혈진압한 일이다. 덩샤요핑은 '흑묘백묘론'의 충실한 신도이자 자신의 왼팔이었던 자오쯔양까지 숙청시키며 천안문을 피로 물들였다. 이 행적은 '흑묘백묘론'에 녹아있는 유연·포용·파격·실리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이다.

왜였을까? 결론은 이미 나 있다. 사회주의 정치체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비유하자면 쥐를 잡으라고 풀어놓은 고양이가 안방에 차고 들어오려고 하니까 단숨에 내친 것이다.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은 결코 몰가치한 것이 아니다. 이명박 당선자의 경우도 그렇다. 이념의 경계를 뛰어넘어 쓸모를 찾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이념 울타리 안에서 전력을 문제 삼지 않는 것이고, '우호관계' 안에서 적재적소원칙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런 사례가 있다. 심재철 의원이 말했다. 대선 투표가 한창이던 지난 19일, 대선 승리를 전제로 "좌파정권이 남긴 각종 흔적을 하나씩 벗겨내는 좌파 적출수술을 할 단계"라고 했다.

다분히 가치 지향적이다. '좌파'라는 임의적 가치 규정이 그렇고, '좌파'를 '악' 또는 '오류'라고 전제하고 도려내기 대상으로 삼은 게 그렇다. '실용'의 흔적이라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너무 앞서 나간 지적인지도 모른다. 심재철 의원은 이명박 당선자가 아니다. 심재철 의원의 말 또한 나중에 회의록에서 삭제됐다. 부분을 전체화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내뱉은 말을 쉬 주워담을 수 없다. 이명박 당선자의 말과 행동에서 이념의 경계를 뛰어넘는 인사와 정책을 아직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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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