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를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아주 어릴 적이었으니까요.
소를 잡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죠. 화덕에 올라앉은 무쇠 솥 안에서 쇠고기가 익어갔고 어른들은 처녑 한 점에 막소주를 들이켰습니다.
좋아라 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쇠고기가 그렇게 달 수가 없었고,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마음도 둥실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사기 그릇 깨지는 소리를 신호탄으로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싸움판으로 변했습니다. 상욕이 오갔고 솥이 뒤집혔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동네 청년들이 주사를 부리거나 싸움질을 해대면 어김없이 호통을 치거나 지게 작대기를 집어들던 어른들이 뒷짐 지고 먼 산을 쳐다보는 모습을 어린 마음으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건 잔치판이 아니었습니다. 폭락한 소값 때문에 장에 내다 팔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동네 청년 몇몇이 체념 반 분기 반으로 배나 채우자고 했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한 푼 두 푼 돈을 추렴해 소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검은 잔치'는 여러 날 계속 됐습니다. 그 때마다 아버지를 따라 나섰던 제 손에는 핏물이 배이고 노끈으로 묶인 신문지 뭉치가 들려있었습니다. 뭉텅이로 썰린 쇠고기였습니다.
2.
그 때의 아버지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충혈된 눈엔 힘이 없었습니다. 지푸라기와 오물을 뒤집어쓴 육신에도 힘이 없었습니다. 두 입술을 헤집고 삐져나오는 담배 연기의 움직임이 요란스럽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아들의 조심스런 인사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그 날 아침의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불안한 적막이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가족들은 애를 태웠습니다.
돼지 새끼가 모두 죽었습니다. 아버지가 밤새 매달리다 못해 읍내에 달려가 수의사까지 불렀지만 모두 사산이었습니다. 한두 마리 건지는가 싶었지만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그 새끼들마저 죽었습니다.
3.
소값이 왜 폭락했는지 모릅니다. 돼지가 왜 사산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 때는 그걸 알 이유가 없었고, 알려 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너무 어렸습니다.
그래도 또렷이 기억합니다. 동네 형들의 '난동'을 기억하고, 아버지의 돌부처 모습을 기억합니다. '검은 잔치'가 끝나고 나서, 한 밤이 지나고 나서 온 동네가, 온 집안이 얼마나 적막강산이었는지 분명히 기억합니다.
4.
경기도 평택의 축산농민 유모 씨의 음독자살 소식을 접하면서 수십 년 전 그때를 떠올립니다. 그 때 동네 형들의 심정이, 그날 아침 아버지의 심정이 농약병을 집어든 고인과 크게 달랐을까를 생각합니다.
달랐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5.
체증이 느껴집니다. 뭔가 꽉 막힌 것 같은 느낌입니다.
수십 년, 더 정확히 말하면 30년은 족히 넘은 시간입니다. 주택복권 1등 당첨금이 100만 원 하던 시절입니다.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고 온 나라가 난리법석을 떨기 몇해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도 달라진 게 없습니다. '잘 살아보세' 구호가 '선진화'로 바뀌었건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참여하고, WTO에 가입하고, 도하라운드 협상을 벌이고,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때마다 농촌구조조정을 부르짖고 농가 지원을 장담했지만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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