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독선이라고 했다. 상당수 사람들이 '대놓고 지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법에 그런 딱지를 붙였다. 그리고 떨어져 나갔다.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최대의 수혜자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반노무현 정서의 혜택을 가장 많이 입은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떨까? 그는 극복하고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 전철을 밟지 않고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반노무현의 적자였던 그가 이제는 노무현의 수제자가 되고 있다. 그와 그의 참모·각료들이 국민 정서와는 동떨어진 발언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추리기도 힘들다. 너무 많다. 그래서 제한한다. 어제 하루 동안 나온 말들로만 제한한다.
▲"친일 문제는 국민화합 차원에서 봐야 한다. 우리가 일본을 용서하는데…" : 이명박 대통령,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가 친일 인사 4776명의 명단을 발표한 데 대해.
▲“미국산 쇠고기를 먹었을 때 광우병에 걸릴까봐 걱정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에 따른 광우병 감염 우려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내에 하겠다고 약속했고 국제수역사무국 기준에 맞으면 하겠다고 했던 것이다…설거지를 해줬으면 고맙다고 해야지 왜 대통령이 사과하나” :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 조치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한 야당 의원들을 향해.
세 사례 모두 지극히 부적절하다. 국민 정서에 어긋나 있을 뿐 아니라 실제 상황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본을 용서한 적이 없다. 국민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일제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 징용자들이 지금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를 내세워 '용서'를 언급하는 게 말이 되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 가서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은 걸 '용서'로 인식하는 국민도 없을뿐더러, 이 대통령의 그런 태도가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다. 오히려 이 대통령의 '우리' '용서' 발언이 '국민화합'에 저해가 될 뿐이다.
▲"광우병에 걸릴까봐 걱정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는지를 모르면 나가야 한다. 저잣거리로 나가고 광장으로 나가 살펴야 한다. 일정이 바빠 짬을 낼 수 없다면 여론조사라도 한 번 의뢰해볼 일이다. 얼마나 많은 국민이 걱정하는지를…. 유 장관은 “저도 미국 가면 쇠고기 자주 먹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그건 그의 개인 행동일 뿐이다. 상당수 국민은 '광우병 마루타'가 될 생각이 추호도 없다.
▲되돌려줄 말이 있다. “매사를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이 대변인의 말이다. 바로 이게 문제다. "설거지를 해줬으면 고맙다고 해야 한다"면 이명박 정부가 먼저 "고맙다"고 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집권했을 때 터진 게 바로 IMF환란이고, 그 후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설거지' 하기에 바빴다. 그 탓에 양극화가 심화됐고 민생이 피폐해졌다는 원성이 치솟았고 이 민심이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잊지 말아야 한다. 혁명정부가 아닌 이상 전임 정부의 공과는 후임 정부의 자산이자 부채라는 사실을.
개별적인 반론은 이쯤 해두자. 말꼬리 잡을 이유도 없고 논리 싸움을 할 필요도 없다.
중점을 둬서 살펴야 하는 건 총론이고 맥락이다. 이 대통령-유 장관-이 대변인의 말에서 공통되게 드러나는 건 '괴리'다. 그들이 언급하는 주체와 실제 주체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
이 대통령의 '우리'와 유 장관의 '국민', 그리고 이 대변인의 '남'은 너무 일방적이다. '우리'와 '국민'과 '남'이 그렇게 인정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주장한다.
이건 독선이다. 자신의 판단을 검증하지 않은 채 옳은 것으로 전제해 놓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로 삼는다. 그래서 오만하다.
이런 사례가 있다. <서울신문>이 오늘 보도한 내용이다. 청와대가 대통령실장 직속으로 홍보 전담조직을 꾸릴 계획이라고 한다. 정책 홍보와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 향상 업무를 전담할 조직이라고 한다.
기조는 뚜렷하다. '수렴'과 '경청'이 아니라 '설득'과 '홍보'다. 청와대 관계자도 그렇게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부 정책의 진정성이 제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노무현 정부가 국정홍보처를 강화하고 청와대·국정 브리핑을 만든 것과 흡사하다.
흡사한 게 하나 더 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할 때 그랬다. 국민 참여를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정부의 성격을 '참여정부'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이명박 정부도 그랬다. 너나 할 것 없이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말 뿐이다. 태도는 요지부동이다. 대통령의 철학과 정부 정책은 별로 잘못된 게 없다. 문제는 그것을 알아주지 못하는 민심이다. 그러니까 홍보를 강화하는 건 필연이자 당위다. 사고는 이런 수순으로 진행된다.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소통'만 놓고 보면 이명박 정부나 노무현 정부나 '도진개진'이다. 굳이 차이를 찾아야 한다면 어느 정부가 더 꽉 막혀있는지, 그 정도를 재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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