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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29 두 개의 촛불과 두 대의 국회 (36)

1.

오늘로 끝이군요. 제17대 국회의 임기가 오늘로 끝이 납니다.

혼자 읊조립니다.

‘벌써?…’

아쉬워서가 아닙니다. 떠나보내는 마음이 안타까워서가 아닙니다. 시차 멀미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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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년 전에 촛불이 일렁였습니다. 광화문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탄핵 반대’를 외쳤습니다. 4년 후에 광화문에서도 시민들이 촛불을 흔들며 간간히 ‘MB 탄핵’을 외칩니다. 촛불 사이에서 17대 국회가 탄생했고 촛불 사이에서 18대 국회가 등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4년 전의 모습과 4년 후의 모습에서 차이점을 발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17대 국회나 18대 국회나 배경사진은 거의 동일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차이를 별반 느끼지 못합니다. 5월 29일이 의정사에 한 획을 긋는 경계선이란 느낌을 크게 받지 못합니다.

3.

어설픈 생각일 수 있습니다. 겉핥기식 인식일 수도 있습니다.

촛불을 끄고 보면 다릅니다. 상전벽해라고 칭해도 될 만큼 큰 차이가 있습니다. 151석의 열린우리당이 153석의 한나라당에 자리를 내줬습니다. 더불어 정책도 큰 포물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촛불을 다시 켜고 봐도 다릅니다. 4년 전의 촛불은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켜졌습니다. 4년 후의 촛불은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해 켜졌습니다.

그런데도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본질은 똑 같습니다. 국회에 대한 실망감입니다. 국회 기능에 대한 불신감입니다.

4년 전에는 국회의 횡포에 분노했습니다.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맘대로 흔드는 데 분개했습니다. 4년 후에는 국회의 무능에 절망합니다. 들끓는 민심을 흡수하지 못하는 데 낙담합니다.

4.

오히려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4년 전에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탄핵 반대’ 외침 속에서 태어난 금배지들이 큰 역할을 해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여느 국회보다 초선 비율이 높은 국회가 새 바람을 일으킬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촛불을 껐습니다.

아니었습니다. 17대 국회에 아로새겨진 수사는 ‘무능’ ‘혼선’ ‘아마추어’ 였습니다.

다시 기대했습니다. 실망감을 추스르면서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에 표를 던졌습니다.

역시 아니었습니다. 그로부터 100일, 30일이 흐르는 동안 국정과 의정에 새겨진 수사는 ‘난맥’ ‘독선’ ‘들러리’ 였습니다.

민심이 멀어지고 있습니다. 여의도와 청계광장의 심리적 거리가 갈수록 더 멀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달라지고 있습니다. 촛불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4년 전의 촛불은 ‘촉구’ 차원이었지만 4년 후의 촛불은 ‘자구’ 차원입니다. 더 이상 국회에 기대할 바가 없다는 생각에 국민 스스로 자구책을 강구합니다. 촛불을 밝힙니다. '일시'에 그쳤던 촛불을 '일상'으로 끌고가려고 합니다.

5.

왜일까요? 왜 촛불을 끄려하지 않을까요?

국민은 우려합니다. 16대 국회가 횡포를 부렸고, 17대 국회가 무능했다면 18대 국회는 독주를 하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민심·민생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내달리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18대 국회가 이 경계심을 불식시키지 않는 한 촛불을 끌 것 같지가 않습니다. 쇠고기 뒤로 도열해 있는 고유가·대운하·FTA·교육 문제를 잘 풀지 못하는 한 촛불을 더 환하게 밝힐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착잡합니다. 17대 국회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착잡한 게 아니라 18대 국회를 맞이하는 마음이 착잡합니다.

촛불이 ‘일상’이 되면 ‘거리의 정치’가 성하게 됩니다. ‘거리의 정치’가 성하면 ‘국회의 위기’는 깊어집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기쁜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금배지를 받아들 게 아닙니다. 삼가는 마음에, 열린 가슴으로 거리를 내다봐야 합니다. 이것 만이 해법입니다.

▲사진=국회 본회의와 촛불집회 장면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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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토씨'